소년시절 여름철에 한내(안양천)에서 멱을 감았던 적이 있었다. 매미소리 시끄러운 그  어느 한 날에 송동골 집을 나선 몇몇 또래들은
국도 일번 이차선 차도를 건너 한내 방향으로 유수히 흐르는 맑은 개울을 우측으로 둔 파출소건물 한길을 지나 대한전선 뒤편 담장을 거쳐 둑길 풀 언덕 편으로 가느 줄기 높은 갈대 어우러진 변전소 앞 철로를 넘어 도착한 시흥 역 뒤편 서면다리 아래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어 찌는 무더위를 잊곤 했었다.

수영을 잘 하는 아이들은 가로 지른 유수 줄기 한복판까지 들어가 수심 얕은 한 지점에서 벌거숭이 몸매를 세워 검지장지 두 손가락을 들어 승리의 V모양을 그려보였으나, 물놀이에 익숙하지 않아 그저 물에 두 발을 담근 선에서 그친 아이들은 물가 풀숲에 숨어있을 몸체 작은 고기들을 각자의 고무신발로 잡곤 했었다.
  동료들을 쫓아 마지못해 물속에 들어선 필자 역시도 푸른 풀로 온통 뒤덮여 각종 메뚜기와 점박이 개구리 뛰는 물가 둔지에 몸을 기대둔 채 수면이 반사해 내는 눈부신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해보자'하며 땅 짚는 헤엄을 시도했다. 사전 방비책으로 대충 둘둘 우겨 감은 풀잎줄기로 양귀를 틀어막았는데도 불구하고 깨끗하지 못한 물이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이후부터 귓병을 앓기 시작했다.
  냄새가 아주 고약한 누런빛 진 고름에 꽉 막힌 청력은 크게 약해져 남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반 귀머거리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귓속은 마른 고름의 딱지로 가득차인데다 그 썩는 악취로 얘기 중 손을 내저으며 피하는 친구들이 생겨난 가운데, 귀전으로는 파리가 윙윙 달라붙었다. 매번 귓불이 늘어질 정도로 잡아당겨 청력을 겨우 열곤 했던 일상불편의 주범인 고름은 밤잠을 자는 중에도 귀 밖으로 흘러나와 베개 적신 지도를 남기곤 했었다. 
 
단체생활 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받는 치료는 면봉약솜에 흠뻑 적신 소독약 청소가 고작이었다. 그때마다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귓속을 가득 메웠다. 귓병 앓는 기간은 마냥 길어지기만 하였다. 급기야 의료시설을 갖춘 미군부대 출입이 허용되었다. 영어를 좀 하는 큰 누나 같은 경상도 처녀 박기숙 보모의 역할이 컸다. 보호자 박기숙 보모가 걸어서 시흥고개를 넘어 도착한 곳은 말뫼고개 아래 보초병 검문이 필시 이행되는 미 공군 38부대 초소였다. 그 좌측으로는 그보다 면적규모가 훨씬 큰 58부대가 위치해 있었다. 헌병의 연락을 받고 초소까지 달려 나온 키다리 의병이 환자와 보호자를 안으로 안내했다.
 
안경잡이 흰 가운 의병 한 명과 노랑머리 여 간호사 한 명이 상주 근무하는 타원형 막사 내 간이병실 면적은 작았다. 체구가 왜소한 어린환자의 귓속 깊이를 전등 빛을 빌어 들여다본 의병은 먼저 위생치료를 했다. 청결은 깨끗이 나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삼 일 뒤면 고름이 귀불까지 다시금 줄줄 흘러내렸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받기로 한 소독치료는 반 년을 채우지 못하고 유야무야 사라졌다. 그 이유는 여전히 풀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도무지 낫지 않는 귓병은 이십 대 성인이 된 무렵까지 신체를 괴롭혔다. 교회 동갑내기 의사친구의 이름으로 대학병원 치료도 받았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스스로 꾸준한 소독청소로 오늘 날에는 청력이 건강해져 대인 관계에 별 지장이 없다.

  38부대 막사병실 이용은 친구들과 기마전놀이를 하다 왼다리 골조상을 입었을 때 한번 더 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심한 통증으로 탱탱 부어오른 다리 골조상 환자의 눈물을 진정시키는 의료설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에 태워다 준 안양(석수동)미군26부대 소속 지프차로 부평 미군부대에 가서 깁스를 했다. 곧바로 안양부대 병사 막사침실에서 깁스 다리 쭉 뻗고 지내는 일주일 특혜를 누렸다. 함께 동거하게 된 두세 명의 미군병사들이 번갈아 삼 세끼 식사를 갖다줬다.

한차례 주중 병문안 온 박기숙 보모의 손에는 여러 권의 위인전기집 또는 동화책이 들려져 있었다. 성경암송 대회에 나갈 정도로 암기력이 뛰어나 특히 국어공부를 잘 하는 좋은 머리로 책 읽기를 즐기는 필자의 심사를 헤아렸던 것이었다. 두 달 가량  목발생활을 했다. 깁스 제거도 부평 미군부대의 선행도움을 받았다. 훗날 주경야독을 하는 고달픈 근로학생의 신분으로 한 달에 한번 꼴로 범죄인 잡는 치안본부 소속 형사와 결혼하여 초등생 두 아들을 둔 박기숙 보모의 상도동 집을 일년 여간 넘나들었다. 두 아들이 삼촌이라 부를 정도로 매우 가까워졌다. 박 보모의 두 남녀 동생들과도 안면을 쌓았다.
 
58부대 미군 철수와 함께 어디론 지로 전격 이전한 미 공군 38부대도 대한민국 국군에 이양되었다. 개인적 인연이 전혀 없는 그 기나길었던 공군부대 세월도 곧 저물 것 같다. 전국 지방선거를 앞둔  구청장, 구 의원, 시의원 후보 모두 다수 여론에 맞추어 공군부대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