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의사라는 사람이 자신의 혈관도 잘 다스리지 못하면서 환자에게는 알코올을 절제하고 식이요법을 잘해서 심장과 혈압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리면 환자에게서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도 나쁜 연기를 내뱉으며 피해를 주는 담배를 끊지도 못하고 도시의 매연이 어쩌니 지구의 공해가 어쩌니 하면서 남을 탓할 수 있을까? 더구나 본인 스스로는 담배를 피우는 의사가 환자에게는 폐암의 예방을 위해서라 도 꼭 금연해야 한다고 시키면 이중인격자로 대접받지 않을까? 제 마음 속의 화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정신과 의사가 환자에게는 항상 마음을 편하게 가지면서 울화를 잘 다스리라고 할 수 있을까?
  이래저래 제대로 된 의사노릇 하기도 참 어렵게 되었다. 그렇지만 잘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내 몸 하나도 잘 간수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의 건강에 올바른 조언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부부간에 다투기만 하고 자식들에게서는 불신을 받고 형제간에도 잘 다투는 사람이 정치판의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보고는 자신은 마치 세상 제일가는 성인인양 위엄을 차리면서 “저 사람들은 왜 허구한 날 저 모양이야?"라고 하면서 열을 낼 수 있을 것인가? 자기 집에 자가용을 2-3대씩 두고서는 길바닥에 차가 너무 많아서 길이 막혀 다닐 수가 없다고 다른 사람들을 맹렬히 비난한다. 자고 난 내 이불도 잘 정돈하지 않고 나오는 사람이 공공장소에 가서는 다른 사람들이 질서가 없고 공공시설물을 깨끗이 쓰지 않는다고 욕을 한 다. 내 생활은 형편없으면서도 남에게는 온갖 상담을 다 해준다고 큰소리를 친다.
 "당신은 남들한테는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집에서는 왜 그래요? 집에서도 좀 잘 해봐요!"
이것은 결혼 후 아내가 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때마다 제일 먼저 꺼내는 말이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제일 가까운 사람이 먼저 이해를 하고 양보를 해줘야지! 자기만 알고 남에게는 잘못하는 <나뿐인 사람>의 준말이 <나쁜 사람>이라는 말도 몰라?"라고 하는 말로 나를 합리화하면서 살다보니 어느덧 내 나이가 벌써 칠십을 바라보게 되어버렸다. 그러는 동안 아내의 불만은 쌓이고 쌓여 이제는 불신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고, 아내도 이제는 기다리다 지쳐서 포기한 모양이다. 그런데 아내의 불만처럼 내가 과연 남에게는 정말로 잘하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아 누구나 그렇듯 새해가 되면 지난날을 돌이켜보면서 그해에 대한 새로운 결의를 다지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몸도 제대로 돌볼 줄 모르는 의사가 무슨 남을 치료를 한다고 그래?" 하는 자성의 망치가 나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래, 아내의 말이 맞구나, 내 가까운 곳의 작은 일도 잘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큰일을 하겠나?"
  비록 이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알아차렸지만, 큰 깨우침이었다.
그래서 새해의 다짐으로 가까운 곳을 먼저 돌보자”는 표어를 마음속에 새겨두기로 했다. 먼저 내 몸과 마음부터 제대로 챙기고, 다음은 아내를 잘 돌보고, 자식과 손자들, 그 다음은 형제들… 이렇게 가까운 사람들한테 부터 잘 해나가기로 굳은 결의를 다졌다.
  제법 그럴듯한 것을 발견한양 그 표어를 되뇌며 보라매공원을 지나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한 나의 발걸음이 의기양양하다고 느끼는 순간 나의 머릿속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만 실소(失笑) 하고 말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없이 들어왔던 이 훌륭한 말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가까운 곳을 먼저 돌보자"라는 말을 지금에서야 떠올리고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누가 엿보았을까봐 싶어서였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사서삼경(四書三經) 가운데『대학大學』에 나오는 말이란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더니 이런 풀이가 있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은 후에 알게 된다. 알게 된 후에 뜻이 성실해진다. 성실해진 후에 마음이 바르게 된다. 마음이 바르게 된 후에 몸이 닦인다. 몸이 닦인 후에 집안이 바르게 된다. 집안이 바르게 된 후에 나라가 다스려진다. 나라가 다스려진 후에 천하가 태평해진다. 그러므로 천자(天子)로부터 일개 서민(庶民)에 이르기까지 모두 내 몸을 닦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배우고 배워도 끝이 없는 모양이다. 좋은 말이 없어서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주위에 가르침은 많지만 우리가 몸소 행하지 않을 따름인 것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내용이 어렵고 그 뜻을 몰라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내가 올해 목표로 세운 가까운 곳을 먼저 돌보자"라는 말도 사실 말이야 쉽지만, 말이 쉽다고 행하기에도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얼마나 이 문제를 깊이 깨닫고 한발자국씩 실행 에 옮기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내 스스로가 내게 실망스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먼저 혈압을 다스리고, 나의 화를 다스리고, 나의 조급함을 다스려야 하겠다. 그리고 식사를 조절하여 나의 비만을 해소해야겠다. 그리고 아내가 인정하는 남편이 되어야겠다. 자식들과 손자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형제간의 우애를 돋우는 길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지혜를 찾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나야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하게 해야 하는 위정자가 아니고 겨우 작은 집안을 이끄는 작은 집안을 이끄는 의사의 신분이니 굳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라는 거창한 말까지 들먹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몸을 닦고 집안을 바르게 하는 것 정도는 내가 해야 할 일이니 작게는 ‘수신제가’ 라도 해야 할 터. '제가' 를 위해서 우선 가까운 곳을 먼저 돌보고자 하는 다짐을 해보기는 하지만, 글쎄 작심삼일 (作心三日)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