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 어머니는 '겨울에는 늘 삼목을 따뜻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다음에는 팥죽 말고 ㅇㅇ사이다를 사오너라” “토요일에 꼭 와 안과에 가자” “노래 많이 하지 말고 어른들 시켜라” “나는 하얀 옷이 보기 좋더라” “너 오늘 말실수했다 어르신, 잘 하셨습니다라고 말해라” “오 만원 받았니?”

금천구의 한 요양원에 계시는 94세의 노모는 갈 때 마다 하실 말씀이 많지만 잘 알아들을 수가 없어 몇 번이고 묻고 들어야 비로소 소통이 된다.

어머니를 뵈러 다니다가 노래를 좋아 하시는 어머니 들으시라고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시작된 요양원의 노래봉사는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매주 일요일마다 한 시간 동안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이제는 어머니를 뵈러 가는 것만큼 익숙해져 버렸다.

처음에는 그저 어머니와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세 가지 조언을 들은 후부터 방향이 바뀌었다. ‘노래 잘하는 분들이 많으니 많이 시킬 것, 말 한마디라도 가볍게 하지 말고 예의바르게 할 것, 몸가짐과 태도를 점잖게 할 것’ 요양원에 오는 봉사자들이나 공연하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을 어머니는 정확하게 집어내 조언을 해 주신 때문이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어머니의 말씀이 구구절절이 맞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흰 남방을 입고 점잖게 말하고 행동하니 어르신들의 참여가 훨씬 높아졌다. 지금은 일요일 공연시간이 되어 가보면 이미 거동을 하실 수 있는 어르신들은 4층에 다 모여서 벌써 기다리고 계신다. 어머니의 세 가지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4년 전 말씀을 잘하시던 90세 어머니는 영하의 이른 아침마다 막내아들에게 어김없이 전화하셨다. “막내야, 추우니 목도리 꼭 하고 장갑 꼭 끼고 다녀라. 양말도 하나 더 신고” 겨울에는 삼목(목, 손목, 발목)을 따뜻하게 해야 건강하다는 옛말 그대로다. 말씀대로 세 곳을 따스하게 하고 집을 나서니 춥기는커녕 찬바람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다.

삼목과 흡사한 삼통(三通)은 여러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중국의 삼통은 통전, 통지, 통고로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우리의 정조실록에는 삼통의 책을 편찬해서 과오를 없애고 육전에 힘써 기강을 바로 잡았다고 쓰여 있다. 지도자들이 잘 인용하는 삼통은 통솔력, 통합력, 통찰력으로 요즘 리더십의 중요덕목으로 쓰여 지곤 한다. 아마 솔선수범하고 쌍방향으로 일컫는 통섭의 리더십과 세상의 이치를 꿰뚫고 균형을 유지하자는 리더들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물론 솔선수범하고 균형을 잡고 세상을 통찰하는 삼통을 위해서 “리더(Leader)는 리더(Reader)여야 한다“는 말도 있다. 우리가 원하는 리더는 책을 읽고 자기 성찰을 꾸준히 하고 비판적 성찰을 한 후에야 세상을 이롭게 하는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고도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먼 미래를 바라보는 리더들이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포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고, 뇌물의혹으로 고위급이 검찰피의자로 출석하고, 귀순 북한병사가 마음을 아프게 하고, 어금니 아빠가 공분을 사게 하는 작금에 살을 에는 혹한의 추위가 오는 이때에 무엇 하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없는 이 시기를 극복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생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라고 말했던 칼 포퍼가 세상에 대해 조언한 것이 바로 이런 의심과 반증이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의심되어야 하고, 100% 진실인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것. 그리고 그것을 예측이라는 선진적인 방향의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비교하고 비판하고 의심하는 것이야 말로 발전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유하고 예측한 후에는 통찰력으로 길을 결정해야 한다.

WBA 헤비급 세계챔피언이었던 마이크 타이슨의 코치 커스 다마토의 묘비명에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 “한 소년이 불씨와도 같은 재능을 갖고 내게로 왔다. 내가 그 불씨에 불을 지피자 불길이 일기 시작해 아름다운 불꽃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누군가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우리의 위대한 힘이 아니겠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주었던 다마토의 통찰력의 진가는 바로 이런 것이다. 단순한 시각에서 나온 판단이 어찌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

어려운 시대는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년에서 평화와 안식을 원하는 노년에까지 사유와 비판을 통한 예측과 추진력이 필요할 따름이다. 나라의 리더들을 포함한 모두가 초이성적인 통찰력을 만들어 세상을 바라보면서 가슴깊이 용융된 마그마(magma)를 끄집어내길 진심으로 바란다.

자유롭게 의심과 반증을 하는 인문적인 3통(통솔력, 통찰력, 통합력)으로 어머니가 조심하라던 삼목(목, 손목, 발목)을 따뜻하게 한다면 추운 겨울을 잘 이겨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유난히 추위가 빨리 다가온 올해는 더 그렇다.